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오카 타츠로 (문단 편집) == [[치바 롯데 마린즈]] GM 시절 == [[파일:external/www.sanspo.com/npb14080111330001-p2.jpg]] ~~히로오카 입장에선 짜증나는~~ [[바비 발렌타인]]과 함께.[* 유니폼이 지금과 많이 다른데, 1992~1994년 입은 초창기 유니폼이기 때문이다. 발렌타인이 정식으로 취임한 1995년부터 '메이저리그 스타일'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고,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5년, [[시게미츠 아키오]] 구단주 대행의 요청으로 히로오카는 3년 계약을 맺고 [[치바 롯데 마린즈]]의 GM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러나 히로오카는 롯데에서 연이은 실정을 저지르면서 그동안 쌓아놓은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고 말았다.''' 우선 히로오카는 취임하자마자 [[텍사스 레인저스]]의 감독을 맡았던 [[바비 발렌타인]]을 감독으로 초빙했다. 그러나 발렌타인 감독과 히로오카는 야구관의 차이로 인해 수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히로오카는 2군 수석 코치였던 에지리 아키라를[* 참고로 에지리는 히로오카의 대학 후배였다.] 1군 수석 코치로 승격시켰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선수들에게 연습을 부과하는 등 밸런타인과의 의향과는 맞지 않는 일을 수차례 하였고 팀은 후반부터 기세를 올려 최종적으로 1985년 이후 10년 만에 A클래스(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히로오카는 시즌 종료 후 밸런타인을 해임시킨 뒤 후임에 수석 코치인 에지리를 임명했다. 밸런타인은 귀국 후 '''“GM은 선수를 모아오는 것이 일인데도 히로오카는 그것을 하지 않고 현장에 참견할 뿐이었다”''' 라고 비판했고 이것에 대해 히로오카는 '''“감독은 현장에서 흙투성인 채로 선수를 가르치는 것이 일일 테인데도 밸런타인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라고 반론했다. 돌이켜 보면 발렌타인과 히로오카 개인의 퍼스널리티가 강했던 것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프론트와 현장과의 관계나 훈련 방식 등에 대한 일본과 미국 사이의 야구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발렌타인 감독은 이후에 지바롯데 마린즈 감독을 다시 맡았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일본스타일 처럼 하려다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단에 엄청단 반감을 사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해당 시즌을 말아먹고 쫓겨났다. 선수들이 단체로 태엽을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있었을정도. 발렌타인 감독도 미국인이지만 다른 미국 감독처럼 수평적인 스타일의 지도를 했던 감독은 아니었다. 한국처럼 감독에게 권한과 권위를 많이 주는 일본에서조차 발렌타인은 독재자 스타일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 그러나 에지리가 감독을 맡은 이듬해 1996년은 시즌 5위로 끝났으며, 선수들과도 수많은 갈등을 일으키면서 결국 히로오카는 3년 계약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2년만에 에지리와 함께 해임당하고 말았다.[* 발렌타인은 이후 2004년 치바 롯데로 복귀하며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이번에도 세토야마 구단 사장을 비롯한 프론트와 대립하다가 2009년 시즌 종료 후 해임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